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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혈액 SBX
인공혈액 개발의 역사

인공혈액 개발의 역사

인공혈액 개발의 역사적 동기
인공혈액(Artificial Blood) 개발의 동기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특히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본격화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전장에서 급격히 늘어난 사상자와 대규모 수혈 수요에 직면하였고, 이로 인한 군 병원 내 혈액 공급 부족은 전쟁 수행 능력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상황은 결국 자국 내 반전 여론을 악화시키는 간접적 요인으로 작용하여 패전으로 귀결되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즉, 안정적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인공혈액의 필요성은 국가 안보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과제가 된 것입니다.

이어 1980년대 에이즈(AIDS) 팬데믹은 또 다른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헌혈 혈액이 HIV에 오염되어 다수의 일반인과 혈액제제 환자들에게 감염이 확산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 전반에서 헌혈 혈액에 대한 불신이 생겼습니다. 이 사건은 안전하고 감염 위험이 없는 대체 수혈원으로서 인공혈액 개발에 대한 사회적·의학적 요구를 폭발적으로 증대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이오기업, 제약회사, 대학 연구소, 그리고 미국 육군 등 다수의 연구기관이 인공혈액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개발의 난제와 헤모글로빈 안정화 전략
인공혈액의 출발점은 비교적 단순하게, 순수 헤모글로빈 분자를 혈액 외부에서 정제하여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수 헤모글로빈은 혈관 내에서 빠르게 대사·배설되어 혈중 반감기가 약 4시간에 불과하며, 신장 독성(nephrotoxicity)과 혈관 수축(vasoconstriction)을 유발하는 등 치명적인 독성 문제가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연구의 방향은 단순한 정제를 넘어, 헤모글로빈 분자의 구조적 안정화 및 표면 처리(surface modification)를 통해 반감기를 연장하고 독성을 줄이는 데 집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화학적 변형 기술이 시도되었으며, 그중 가장 큰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 PEGylation(폴리에틸렌글리콜화) 기술이었습니다.


PEG-hemoglobin의 탄생: 노광 대표의 최초 시도
1990년경, 당시 미국의 Enzon 사에서 근무하던 노광 대표는 헤모글로빈 분자의 표면에 PEG 사슬을 공유 결합시키는 PEGylation을 세계 최초로 적용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PEG-hemoglobin입니다. PEGylation은 단백질의 표면을 친수성 고분자로 코팅함으로써 혈중 반감기를 비약적으로 늘리고, 분자의 면역원성을 낮추며, 혈관 내 독성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PEG-hemoglobin은 단순히 구조적 안정성 향상에 그치지 않고, 산소 운반 특성—특히 산소 친화성(oxygen affinity, P50)—의 개념적 전환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인공혈액 개발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이는 발명자가 노광인 미국 특허 #5,234,903, #5,264,555, #5,312,808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P50 개념의 전환: “정상과 동일”에서 “저산소 선택적”으로
당시 대부분의 인공혈액 개발사들은 하나의 암묵적 전제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즉, “인공혈액의 P50은 인간 적혈구의 P50(약 26–28 mmHg)과 동일하거나 유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인공혈액은 적혈구를 단순 대체해야 한다’는 관점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광 대표는 이 전통적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는 임상적 상황을 보면, “환자가 대량 출혈을 겪더라도 대부분은 전체 혈액의 20~30% 소실 범위이며, 대부분의 혈액을 잃는 경우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인공혈액의 핵심 기능은 단순히 정상 적혈구와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출혈로 인해 발생하는 산소 결핍(oxygen deficit)을 빠르게 보충하고, 특히 저산소증을 겪는 세포와 조직에 선택적으로 산소를 전달하는 데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노광 대표는 당시 대부분의 개발사들이 P50 = 20~30 mmHg 수준의 인공혈액을 설계하던 것과 달리, P50 ≤ 10 mmHg라는 낮은 산소분압에서만 대부분의 산소를 방출하는 PEG-hemoglobin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이후 인공혈액 연구 방향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습니다.


1세대 인공혈액 개발사들의 실패
초기 1세대 인공혈액 개발사들은 구조적 불안정성과 독성 문제, 그리고 자금난으로 인해 대부분 개발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폐업에 이르렀습니다.

  • Baxter Healthcare: HemAssist(Diaspirin cross-linked hemoglobin, DCLHb)를 개발했으나, 외상 환자 대상 임상 3상에서 사망률 증가와 심혈관계 부작용이 보고되며 1998년 조기 종료.

  • Hemosol(캐나다): Hemolink를 개발했으나 심근허혈과 부정맥 발생률 증가, 혈관 수축 문제 및 자금난으로 개발 중단.

  • Northfield Laboratories: PolyHeme을 개발했으나 심근경색·사망률 증가, 환자 동의 없는 임상 설계로 윤리 논란까지 발생. FDA 승인 실패.

  • Biopure: Hemopure(인간용)와 Oxyglobin(동물용)을 개발. Hemopure는 부작용 문제로 승인 실패, Oxyglobin만 제한적 성공.

  • Somatogen/Apex Bioscience: 재조합 인간 헤모글로빈 rHb1.1 (Optro) 개발했으나 산소 친화도 이상과 산화 스트레스 문제로 중단.

  • Sangart: MP4(PEG-Hemoglobin)를 개발했으나 대규모 임상에서 충분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해 중단.

공통된 실패 원인으로는

  1. NO 소거로 인한 혈관 수축·고혈압,

  2. 산소 전달 효율 문제,

  3. 산화 스트레스 및 면역 반응,

  4. 고위험군 대상 임상 설계,

  5. 자금난 등이 있었습니다.


2세대 인공혈액 개발사
그러나 이러한 경험과 데이터는 차세대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0~2010년대에 등장한 2세대 인공혈액 개발사들(선바이오, Prolong Pharmaceuticals, Sangart)은 앞선 세대의 실패를 교훈 삼아 보다 개선된 제형을 갖춘 PEG-hemoglobin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이들 역시 공통적으로 낮은 P50 값을 지닌 산소 운반체를 설계함으로써, 저산소 선택적 산소 전달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영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인공혈액 개발은 전쟁, 감염병, 수혈 불신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촉발되었고, PEGylation이라는 기술적 혁신과 P50 개념의 전환을 통해 오늘날 차세대 HBOC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1990년경 노광 대표가 최초 제안한 low-P50 PEG-hemoglobin의 컨셉은 이후 2세대 개발사들의 전략적 지향점으로 자리 잡으며, 인공혈액 개발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